한국신화/천지왕 본풀이

천지왕이 직접 수명장자를 징치하는 버전

실풀이 2022. 4. 2. 08:31
태초는 혼돈이였다.
하늘과 땅이 한 덩어리로 서로 맞붙은 암흑천지였다.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개벽의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의 머리가 저마다 열리면서 금이 생겨났다.
그 금이 점점 벌어지더니 땅 덩어리에서 산이 솟아 올랐다.
동쪽 하늘엔 견우성, 서쪽에는 직녀성, 남쪽에는 노인성, 북쪽에는 북두칠성이 그리고
하늘 한가운데 삼태성이 뜨더니 이어서 많은 별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 다음 구름이 생겨났다.
동쪽에서는 푸른구름이, 서쪽에서는 흰구름이, 남쪽에서는 붉은 구름이, 북쪽에서는 검은구름이
그리고 하늘 한가운데는 누런 구름이 떠 오락가락 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울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때 하늘의 옥황상제 천지왕이 해 둘 달 둘을 내보냈다.
드디어 천지가 활짝 개벽되었다.
 
세상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텐데 묘책이 없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 천지왕은 어느 날 기가 막힌 꿈을 꾸었다.
하늘에 둘씩 떠 있던 해와 달을 하나씩 삼켜서 먹어버리는 꿈이였다.
옳거니, 세상질서를 바로 잡을 귀동자를 얻을 길몽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한 천지왕은 지상의 총명부인과 혼인하기 위해 서둘러 지상으로 내려왔다.
총명부인은 매우 가난했다.
천지왕이 찾아왔지만 저녁 한끼 대접할 쌀이 없었다.
고민 끝에 동네에서 제일 부자로 사는 수명장자에게 쌀을 한되 꾸러갔다.
 
수명장자는 마음씨가 고약했다.
쌀에다 흰모래를 섞어 한되를 채워 꾸어주었다.
그 쌀을 깨끗이 씻고 열번이나 일어 저녁밥을 지은 총명부인은 밥상을 차려 천지왕과 마주 앉았다.
흐믓한 마음으로 첫 숟갈을 든 천지왕, 그러나 돌이 우지근 씹혔다.
 
부인 어째서 첫 술에 돌이 씹히는거요?
쌀이 없어서 수명장자에게 꾸러 갔더니 흰모래를 섞어 줍디다.
열번이나 일었지만 모래가 하도 많이 섞여 첫 숟가락에도 돌이 씹히는 모양입니다.
이런 괘씸한,
 
화가 난 천지왕은 수명장자의 됨됨이를 낱낱이 캐어 물었다.
고약하기 이를 대 없었다.
가난한 사람이 쌀을 꾸러가면 흰모래를 좁쌀을 꾸러가면 검은모래를 섞어주는데
작은 말로 꾸어 줬다가 큰 말로 돌려받아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수명장자의 딸들과 아들들도 고약스럽기 마찬가지였다.
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놉으로 밭의 김을 매는데 점심식사 때 맛좋은 간장은 자기네만 먹고
놉들에게는 고린 간장을 먹였다.
아들들은 마소에게 물을 먹여오라고 하면 말발굽에 오줌을 누어
물통에 들어던 것처럼 보이고 물을 굶겼다.
 
괘씸하고 괘씸하구나
벼락장군, 벼락사자 내보내라 우뢰장군, 우뢰사자 내보내라 화덕장군 내보내라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천지왕은 벼락같이 명을 내려
수명장자의 으리으리한 집을 한거번에 홀랑 불태워 버렸다.
불 탄 자리에 사람이 죽어 있으니 그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굿을 했다.
그 뒤로 불에 타 죽은 영혼이 신당뒤에 들어서 얻어먹는 법이 시작되었다.
 
화재가 났던 곳에는 화덕진군을 내보내는 불찍굿을 했다.
그로부터 불찍(화덕진군)사자는 불찍굿에서 얻어먹는 법이 마련되었다.
 
천지왕은 수명장자의 아들과 딸들에게는 엄벌을 내렸다.
가난한 사람들을 고약하게 학대한 딸들은 꺽어진 숟가락 하나를
엉덩이에 꽂아 팥벌레 몸으로 환생 시켜버렸다.
마소에게 물을 굶겨 목마르게 한 아들들은 솔개 몸으로 환생시켜
비 온뒤에 꼬부라진 주둥이로 날개의 물을 핥아 먹게했다.
 
이런저런 법을 마련한 뒤 천지왕은 비로소 총명부인과 혼례를 올렸다.
총명부인과 천정배필을 맺은 천지왕은 달콤한 며칠을 보낸 뒤 하늘로 올라가야 했다.
당신은 아들 쌍둥이를 나을것이요.
큰아이 이름은 대별왕 작은아이는 소별왕이라 지으시오
천지왕의 말대로 총명부인은 아들 쌍둥이를 낳아 "대별왕" "소별왕"이라 이름 지었다.
쌍둥이 형제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
똑똑하기 그지없어 글공부, 활공부를 잘했지만 벗들에게 아비없는 호래자식이라고 놀림받기 일쑤였다.
 
형제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형제의 아버지가 천지왕임을 밝히고 박씨를 내 주었다.
형제는 정월 첫 돼지날에 정성껏 박씨를 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의 움이 돋아나더니 덩굴이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갔다.
형제는 박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귀동자 형제를 맞은 왕은 매우 기뻐했다.
이제 세상의 혼잡한 질서가 바로 잡힐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대별왕에게는 이승을 소별왕에게는 저승을 맡아 통치 하도록했다.
소별왕은 이승을 차지하고 싶어 꾀를 냈다.
우리 수수께끼를 해서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고
지는 자는 저승을 차지하도록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형은 동생의 제안대로 하기로 하고 먼저 수수께끼를 시작했다.
어떤 나무는 평생 밤낮 잎이 지지않고 어떤 나무는 잎이 질까?
마디가 짤막한 나무는 잎이 지지않고 속이 빈 나무는 잎이 집니다.
모리는 소리마라 청대 갈대는 속이 비어 있어도 잎이 지지 않는다.
 
동생이 졌다, 형이 다시 물었다.
어떤 이유로 언덕위의 풀은 잘 자라지 않고 낮은 쪽은 풀은 무럭무럭 잘 자라느냐?
이삼 사월 샛바람 봄비에 언덕의 흙이 낮은 쪽으로 내려가니
언덕의 풀은 잘 자라지 않고 낮은데의 풀은 잘 자랍니다.
모르는 소리마라 사람은 머리털은 길고 발등 털은 짧지 않더냐.
 
이번에도 진 동생은 다른 꾀를 냈다.
형님 그러면 우리꽃을 심어서 잘 자라 꽃을 피우는 사람이 이승을 차지하는게 어떻습니까?
이번에도 형은 그러자고 하고 지부왕에게 가서 꽃씨를 받아다 저마다 심었다.
꽃씨는 곧 움이 돋아났다.
그런데 형이 심은것은 왕성하게 자라 꽃봉오리가 맺혔는데
동생이 심은것은 이울어져갔다. 불안해진 동생은 또 얼른 꾀를 냈다.
 
형님 누가 잠을 잘자나 내기나 한번 해 봅시다.
현재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동생은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다가 형이 깊이 잠들자 얼른 꽃을 바꿔치기 하고 형을 깨웠다.
일어나보니 형 앞의 꽃은 시들어 가고 동생 앞의 꽃은 활짝 피어 있었다.
약속은 약속인지라 형은 어쩔 수 없이 이승을 동생에게 넘기며 말했다.
 
소별왕아, 이승을 차지하긴 하라마는
인간 세상에는 살인, 역적 많으리라 도둑도 많으리라
남자는 자기 아내를 두고 남의 아내를 우러르기만 하고
여자도 자기 남편 두고 남의 남편을 우러르기만 할 것이다.
 
소별왕이 이승에 내려와 보니 과연 질서가 엉망이였다.
곤란해진 소별왕은 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별왕은 이승에 내려와 우선 하늘에 떠있는 두개의 해와 두개의 달을 정리했다.
 
천근 활과 천근 살로 앞에 오는 해는 남겨두고 뒤에 오는 해를 쏘아 동해바다에 던졌다.
또 앞에 오는 달은 남겨두고 뒤에 오는 달을 쏘아서 서해바다에 던졌다.
그래서 하늘에는 해와 달이 하나씩 뜨게 된것이다.
 
송피가루 닷말 닷되를 세상에 뿌려 초목과 짐승의 혀를 굳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만이 말을 하게 된것이다.
귀신과 사람은 무게로서 갈랐다.
저울을 가지고 하나하나 달아 백근이 차면 인간으로 보내고 백근이 못되면 귀신으로 처리해 정리했다.
 
그렇게 자연의 질서는 바로 잡았지만 대별왕은 더 수고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날까지도 인간세상에는
역적, 살인, 도둑, 간음이 여전히 많게 되었고 저승법은 맑고 공정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