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문전신화는 인간이 몸담고 살고 있는 집의 곳곳에, 집안으로 들어오는 첫 문전과 조왕,
울타리 안 동서남북, 집 출입문 등에 그 곳을 지켜 주는 신들이 있고 이들에게 가내의 안전과
행복을 빌었던 제주의 이야기다.
문전제는 제주도 전역에서, 명절, 기제사, 신년제, 혼례, 아이가 군대 갈 때, 누군가 외지로 출타할 때,
집을 옮길 때 등 집안의 모든 일에, 크게 작게,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실제로 제주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거의 대부분 이 문전제를 지내는 절차를 밟고 있다.
문전제의 제의대상인 문전신은 제주의 신화 <문전신화>에서 유래한다.
문전신화는 ‘집’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소우주로 삼고, 거기에 대우주의 음양오행의 섭리를 실현시키고
그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방향’들을 아름다운 오방색으로 은유 상징화시키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살고자 애썼던 제주사람들의 삶, 공간의 의미에 맞는 신화이야기를 창조해내었던
제주사람들의 감수성과 철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신화다.
문전신화
남산고을 남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결혼하였다.
집안은 몹시 곤궁하였고 어렵게 어렵게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부부 사이에 차례차례 일곱 형제가 태어났다.
여전히 살림은 곤궁하였고, 아이들이 커가기 시작하자 여산부인의 시름은 날로 깊어 갔다.
여산부인이 남선비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리 살아 가지고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식들도 많아졌고 이대로는 살 수가 없으니 무곡장사나 해보기 어찌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밑천이 없는데 어찌 하리오?”
“걱정 마십시오.
망건과 양태를 짜서 모아둔 돈이 있습니다.”
“어서 그건 그렇게 합시다.”
여산부인은 서둘러 남선비가 타고 갈 배를 마련하였다.
남선비가 물 밖에 나가 무곡장사를 하기 시작하면, 돌아오면서 책이며 붓, 먹도 사올 수 있겠고,
그것으로 아들들 공부도 시킬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니 여산부인은 더욱 힘이 났다.
남선비는 전배독선을 잡아놓고 어린 자식과 이별하여 남선고을을 떠나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가다보니 오동나라 오동고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동고을에는 간악하기로 소문이 난 노일저대구일의딸이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일은 하지 않고 간들간들 놀고먹으면서 남의 것을 가로채고 좋은 사이 훼방 놓고
못된 짓만 골라하는 간악한 여인이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남선고을 남선비가 전배독선을 잡아타고 무곡장사를 하러 왔다는 소문을 듣자
뭐 긁어먹을게 없나 부리나케 포구로 달려 왔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온갖 아양을 다 떨어대며 남선비를 꾀기 시작했다.
“남선비님, 오동나라에 처음 왔으니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아, 고맙소.
그렇지 않아도 거처할 곳을 궁리하던 중이오.”
거의 끌다시피 남선비를 자기 집으로 청한 노일저대구일의딸은 다시 살랑살랑 거리면서 장기 바둑이나
두며 놀음놀이나 해보자고 권했다.
“남선비야, 남선비야, 이리 와서 우리 심심소일로 바둑 장기나 두면서 놀이나 하여 봅시다.”
“어서 그것은 그렇게 합시다.”
바둑 장기를 벌여놓고 이리 두고 저리 두고 놀다 보니, 남선비는 결국은 며칠 동안 내기바둑 한 번
이겨보지 못하고, 입고 간 명주 두루마기도 벗어주고 갓도 벗어주고 전배독선도 다 팔아먹고 가진
돈 장사 밑천을 모두 다 날려버렸다.
오도 가도 못하는 거지 신세가 된 남선비는 노일저대구일의딸을 첩으로 맞아, 거적문 수수깡외기둥
초막에 기거하면서 노일저대구일의딸에게 기대어 겨우 끼니나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자기는 좋은 음식 먹고 간들간들 놀러 다니면서 남선비에게는 겨죽만 얻어 먹이고
채밥만 얻어다 먹였다.
남선비는 달려드는 개에게 겨죽이나마 빼앗기지 않으려고 겨죽 단지를 꽉 끼고 구부려 앉아
‘이 개 저 개 주어 저 개’ 쫓으면서 끄덕끄덕 졸고 있는 꼴이 되었다.
그렇게 석 달 열흘 백일이 되자 남선비는 영양실조로 눈까지 멀게 되었다.
한편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여산부인은 연삼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아들 일곱 형제를 불러 앉혔다.
“너희 아버지가 무곡장사를 나갔는데 여태 안 오는 것을 보니 이상하다.
필시 곡절이 있는 듯하다.
머리카락이 안 올라오는 것을 보니 죽은 것 같지는 않으니 깊은 산 속으로 올라가 곧은 나무를
베어다가 전배독선을 만들어주면 이 어미가 너희 아버지를 찾아오마.”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서 산에 올라 곧은 남부를 베어 전배독선을 한 척 짓고 짚신도 일곱 켤레를 만들어라.
아버지를 찾아오마”
“아닙니다. 어머니, 저희가 가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가마.
너희들이 가다가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제사며 소분벌초를 누가 할 것이냐?
나 하나 빠진 건 큰 탈 없으니 내가 가는 게 낫다.”
일곱 형제는 어머니가 말하는 대로 깊은 산 속으로 올라가서 곧은 나무를 베어다가 전배독선을
만들어 놓았다.
여산부인은 일곱 아들과 이별하고 남선고을을 하직하여 남편을 찾아 떠났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가는 것이 여산부인도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다다르게 되었다.
여산부인은 바닷가에 배를 대고 이리저리 남편을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는데, 아이들이 이상한 노래를 하며 기장 밭의 새를 쫓고 있었다.
“요 새 저 새
너무 약은 체 말아라.
남선비 약은 깐에도
노일저대구일의딸 호탕에 들어서
전배독선 다 팔아먹고
비조리초막에 앉아
겨죽 단지를 옆에 놓고
요 새 저 새 주어 저 새”
노래를 듣던 여산부인은 정신이 번쩍 나 기장 밭에 새를 쫓는 아이에게 말을 하였다.
“아까 너희들 한 노래가 무슨 노래냐? 방금 한 노래를 한 번 더 들려주면 영초댕기나 해 주마.”
“아무 노래도 안 했습니다.”
“그리 말고 조금만 해 주어라. 남선비 어쩌고저쩌고 했잖느냐”
“아까 이 새 저 새 너무 약은 척 말아라.
남선비 약은 깐에도 노일저대구일의딸 홀림에 들어서 전배독선 다 팔아먹고 겨죽 단지 옆에 차고 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요 새, 저 새 주어 저 새 쫓았을 뿐입니다.”
“설운 아기야, 그 남선비가 어디 살고 있느냐? 남선비 있는 데를 가르쳐 주어라.”
“요 재 넘고. 저 재 넘어서 가십시오.
넘어서 가다 보면 거적문에 나무돌쩌귀 달린 비조리초막에 살고 있습니다.”
여산부인은 기장밭에서 새를 쫓는 아이에게 영초댕기를 달아주고, 이 고개 넘어 저 고개 넘어 걸어갔다.
가다 보니 대동대단 홑치마 저고리에 은가락지 놋가락지를 낀 한 여자가 일천 한량들이 어우러져 호호 하하
놀고 있었다.
남들 다 열심히 일하는 시간에 참 팔자도 좋구나, 생각하며 비껴 지났다.
거적문에 나무돌쩌귀 달린 비조리초막이 보였다. 여산부인이 들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길을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날이 다 저물어서 하룻밤 머물고 가게 해 주십시오.”
“아이고, 설운 부인님아, 우리 집은 집도 좁고 손님이 머물 수 없습니다.”
“아니, 사람 외방 다닐 때 집을 지고 다닙니까?
부엌이라도 좀 빌려주십시오. 밥이라도 해 먹게.”
“난 모르오. 노일저대구일의딸이 오면 마음대로 사람을 들였다고 욕할 거요.”
못이기는 척 겨우 남선비가 허락하니, 여산부인은 부엌에 들어서서 솥을 열어 보았다.
솥에는 겨죽이 바싹 눌러 붙어 있었다.
여산부인은 솥을 한 번 두 번 세 번 닦아 놓고 나주영산 은옥미를 씻어 저녁밥을 짓고는 남선비에게 가져갔다.
남선비는 눈이 어두워 그 때가지도 여산부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 밥상 받으세요.”
“설운 부인님아, 이게 어떤 일입니까?”
남선비가 첫술을 들면서 눈물을 다르륵 흘렸다.
“아니 어찌 첫 술에 우십니까?”
“나는 본래 남선고을 남선비가 됩니다.
무곡장사를 왔다가 노일저대구일의딸 홀림에 빠져 전배독선을 다 팔아먹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나도 옛날에는 이런 밥을 먹었었습니다.”
한 참 동안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며 하소연하던 남선비가 번뜩 무슨 생각이 났는지 불쑥 말했다.
“요거, 한 입 남겼다가 우리 노일저대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따, 헛걱정 말고 어서 들기나 하세요.
보아하니 뻔한데, 그렇게 당하고도 노일저대 타령이니….
아이고 설운 남선비님아, 정말 날 모르겠습니까? 여산부인입니다.
당신 첫 부인입니다.”
“아니 뭐요? 여산부인이 왔다고?”(계속)
남선비가 여산부인의 팔목을 부여잡고 그간의 서러운 회포를 풀며 만단정화를 나누고 있는데,
노일저대구일의딸이 어디 가서 남에게 품팔이를 하였는지, 치맛자락에 겨 한 되를 싸 들고 먼 올레로
조로로 들어서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마구 욕을 해댔다.
“이 놈 저 놈 죽일 놈아, 나는 어디 가서 죽을 듯 살 듯, 겨 한 되라도 빌어다가 죽이라도 쑤어대면서
배불리 먹여 놓으니 길 넘어가는 여자를 데려다 놓고 만단정화나 나누고 있구나.”
“무슨 만단정화 말이오.
여산 고을 큰 부인이 찾아왔소.”
그러자 본부인인 여산부인이 온 것을 안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살살거리며
여산부인에게 말했다.
“아이고, 그러니까, 우리 형님이 오셨구나, 아이고, 형님!”
“그동안 남선비를 잘 거두어줘서 고맙네.”
“아이고, 설운 형님, 오뉴월 한 더위에 이곳까지 찾아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가며 노일저대구일의딸이 여산부인에게 아양 떠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남선비가 말했다.
“큰부인이 왔으니 나는 전에 살던 내 집으로 돌아가겠소.”
“나도 같이 가겠습니다.
제발 나도 같이 가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같이 가고 싶으면 같이 가세.”
“아이고, 형님 고맙습니다.”
“설운 형님! 이 더위에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오십시오, 우리 주천강에 가 시원하게 목욕이나 하고 와서 저녁밥이나 지어 먹고
노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서 그것은 그렇게 하시게.”
“설운 형님! 옷을 벗으십시오.
등에 물이나 시원하게 놓아 드리겠습니다.”
“자네나 시원하게 놓게. 난 아니 놓겠네.”
“아니 형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 물도 다 차례가 있는 법입니다.
형님 아니 놓은 물을 어찌 내 등에 먼저 놓을 수 있습니까?
형님 먼저 물을 놓으십시오.”
여산부인이 적삼을 벗어 허리를 굽히니 노일저대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형님, 바지도 벗어 물팡 위에 던져두십시오.
바지에 물 들어 갑니다.
치마도 벗어 물팡 위에 던져두십시오. 치마에 물 들어갑니다.”
“….”
“버선도 벗으십시오. 신도 벗고 소중이 하나만 입고서 굽으십시오.”
큰부인은 노일저대가 시키는 대로 소중이 하나만 입고 허리를 굽혀 등을 내 밀었다.
노일저대는 물을 한 줌 쥐어 여산부인의 등을 적셨다.
“아이고 내 속이 다 시원합니다. 시원하지요?”
“그러네.”
노일저대는 다시 물을 한 줌 쥐어 등을 미는 척하다가 주천강 속으로 여산부인을 확 떠밀어버렸다.
여산부인은 푸푸푸푸,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물 밖으로 나오려 하면 꾹 눌러버리고, 다시 나오려고
하면 또 꾹 눌러버리니, 얼마 후 물속으로 가라앉아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여산부인의 감태 같은 머리가 여기저기 흩어졌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흩어진 여산부인의 옷을 입고 휙휙 주워 입고,
큰부인으로 변장을 한 다음 남선비에게 돌아갔다.
“설운 낭군님, 노일저대 행실이 하도 괘씸하여 등을 미는 척하다가
주천강 연못에 확 빠트려 죽여 버리고 왔습니다.”
“어, 그 년 잘 죽였다. 겨죽이나 주면서 날 눈 멀게 한 년. 큰부인, 갑시다. 우리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남선비가 변장한 여산부인과 함께 전배독선 잡아타고 오동나라를 하직하여 남선고을 수평선에
가까이 와 가니, 남선비 아들 일곱 형제는 부모님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선창가에 마중 나왔다.
정성으로 부모님을 맞으려 큰아들은 망건을 벗어 다리를 놓고, 둘째 아들은 두루마기를 벗어 다리를 놓고,
셋째 아들은 적삼 벗어 다리를 놓고, 넷째 아들은 잠방이를 벗어 다리를 놓고, 다섯째 아들은 행전을 벗어
다리를 놓고, 여섯째 아들은 버선을 벗어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똑똑하고 영리한 막내 녹디생이는 칼날을 위로 세워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형님들이 말했다.
“어떤 일로 부모님이 오시는데 칼선다리를 놓느냐?”
“설운 형님아, 아버님은 우리 아버님이지마는 어머님은 우리 어머님이 아닌 듯합니다.”
“어떻게 하여 알아지겠느냐?”
“어머님이 우리 어머님이 아닌지 맞는지 알려면 배에서 내려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알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선창가에 내리고 부모 자식 간 그동안 고생한 만단정화를 나누었다.
과장된 몸짓을 해대는 어머니를 보고, 막내 녹디생이는 아무래도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인데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아닌 듯하다고 여겼다.
부모님을 앞세우고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눈이 멀고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닌 지라 집으로 가는 길을 알 리가 없었다.
이 올레도 기웃, 저 올레도 기웃, 이 올레로 쑥 들어섰다 나오고, 저 올레로 쑥 들어섰다 나오곤 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우리 집을 모르십니까?”
녹디생이가 물었다.
“말도 마라. 너의 아버지 찾아오느라 너무 오래 배를 타고 와서 속이 확 뒤집히고 어질어질 하다.
큰 놈아, 뭐하냐? 길 가리켜라.”
집에 도착한 아들들은 마당 구석에 모여 막내 녹디생이가 생각한대로 아무래도 우리 어머니가 아닌 듯하다고
수군덕거렸다.
노일저대는 수군덕거리는 일곱 형제들을 못 본 척하고 집안으로 휙 들어가서 여기도 휘휘 ,
저기도 휘휘,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았다.
“큰놈아, 열쇠 꺼내거라.”
“어디 열쇠 말입니까?”
“어디 열쇠긴 어디 열쇠냐? 고팡 열쇠 말이다.”
“제가 어찌 압니까? 어머니 놔둔 데를 보십시오.”
“너의 아버지 찾으러 갔다 오느라 속 섞어져서 기억이 하나도 안나니 그런다.”
겨우 열쇠를 찾아 고팡으로 들어간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이 항아리도 열어보고 저 항아리도 열어본 뒤에야
보리쌀을 찾아내어 저녁밥을 지었다.
“큰놈아, 간장 어디 있느냐?”
“어머님 놔 둔 데 있을 겁니다.”
“너의 아버지 찾으러 갔다 오느라 셈이 다 섞어져서 그런다니까!”
이 항 저 항 다 열어보고 나서야 간장도 겨우 찾아내어 밥상을 차리는데 밥상을 차려 놓는 것을 보니,
아버지께 가던 상은 자식에게 가고, 자식 밥상은 아버님께 가고 있으니, 필시 어머니인 여산부인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날부터 일곱 형제는 진짜 우리 어머니는 어디 가서 무슨 고생을 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으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눈치 빠른 노일저대는 남선비의 일곱 아들이 자기의 정체를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이 두려웠다.
이러다간 일곱 형제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어떻게든 이 아들들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일곱형제가 어머님 생각을 하면서 슬프게 울고 있던 어느 날 노일저대는 갑자기 마루로 뛰쳐나와
남선비에게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네 방구석을 뱅뱅 구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노일저대구일의딸이 죽을 사경이 되어 가자 남선비가 혼겁을 집어먹고 말했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냐? 어쩌면 좋겠느냐?.”
“설운 남인님아, 내 병은 주사 맞고 약 먹어 낫는 병이 아닙니다.
나를 살리려거든 이리 저리, 요리 저리 가다 보면 대로 노상에 망텡이를 쓰고 앉아 점을 치고 있는
점쟁이가 있으니 문복이나 한 번 봐 주십시오.
잘 아는 심방이라고 합디다.”
남선비가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서는 사이에, 노일저대는 먼저 울담을 활딱 넘어 지름길을
휙휙 가로질러, 망텡이를 뒤집어쓰고 점쟁이인양 앉아 있었다.
남선비가 다가와 말했다.
“일을 잘 아는 어른입니까?”
“무슨 일입니까?”
“문복이나 하나 지어 주십시오.”
“어떤 문복이 됩니까?”
“우리 부인님이 삽시간에 몸에 병이 들어 사경에 당했습니다.”
노일저대는 손까락을 꼬부렸다 폈다 하면서 점쟁이 흉내를 냈다.
남선비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내 부인이 어디가 아파서 그럽니까?”
“남선비님, 아들 일곱 형제가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살릴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딱한 일이긴 하나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어야 좋겠습니다.
이 방법밖엔 도리가 없습니다.”
남선비는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을 듣고 반쯤 넋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거짓 점괘를 내놓은 노일저대는, 남선비가 돌아오기 전에 지름길로 휙휙 집으로 돌아 와
배를 잡고 뒹굴며 외쳐댔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하늘같은 낭군님아, 그래 문점 하러 가니 어떤 점괘가 나옵디까?”
“응, 그게….”
“나 다 죽어서야 말하시겠습니까? 빨리 말해주십시오.”`
“아들 일곱 형제 죽여, 간을 내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합디다.”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애기들 간을 어떻게 먹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그럼 여기로 해서 여기로, 요기로 해서 요렇게 가 보십시오.
거기서 구덕을 쓴 점쟁이가 점을 친다고 합니다.
거기서도 같은 점괘가 나오는지 한번 물어보고 오십시오.”
남선비가 나가자, 이번에도 노일저대가 먼저 도착하여 구덕을 쓰고 점쟁이인양 앉아 있었다.
“어찌 오셨습니까?”
“일 잘 아는 어른입니까? 부인이 아파서 왔습니다.”
이번에도 노일저대는 손가락을 꼬부렸다 폈다 하면서 점을 치는 흉내를 내다가 말했다.
“아들 일곱의 간을 내어 먹으면 좋을 일이로다만, 어찌 에미가 자식의 간을 먹는단 말이오.
하지만 자식들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번에도 노일저대는 다시 지름길로 남선비보다 일찍 돌아와, 더 죽어가는 시늉을 하며 배를 잡고 뒹굴었다.
또 점쟁이에게 다녀온 남선비가 이번에도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어야 좋겠다는 점괘가 나왔다고 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시치미를 떼다가는, 난감해 하는 모양으로 말을 했다.
“제 아기 간을 어떻게 먹습니까?
그래도 서방님아, 모든 일은 삼세번이라 했으니 마지막으로 뒷집에나 가 보십시오.
거기에도 삼태기를 쓴 점쟁이가 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남선비는 삼태기를 쓴 점쟁이 앞에 도착했지만 막상 앞에 가서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제자리를 맴돌기만 했다.
“어떻게 오신 손님인데 서성거리기만 하십니까?”
“집에 부인이 아파서 왔습니다.”
남선비는 나날이 심해져가는 아픈 증세에 대해 소상히 말했다.
노일저대는 다시 손가락을 꼬부렸다 폈다, 꼬부렸다 폈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기를 반복했다.
“점괘가 안 나옵니까?”
“아니요…. 다만 어려운 일입니다.”
“뭘 해야 합니까? 못할 일입니까?”
“…. 아들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으면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남선비가 돌아와 말을 하자 노일저대가 탄식하며 말했다.
“아이고 세 점쟁이가 모두 아이들 간을 내 먹으라고 똑같은 말을 하니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 할 수 없습니다. 낭군님, 내 말 들어보십시오.”
“….”
“나는 죽으면 다시 못 옵니다.
그렇지만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주면, 내가 살아나서 한 배에 셋씩, 세 번만 낳으면 형제가 더 붙어서
아홉 형제가 될 것 아닙니까?”
노일저대의 말에 솔깃해진 남선비가 은장도를 꺼내서 실금실금 갈기 시작했다.
이때 마침 뒷집에 사는 청태산마고할망이 불을 담으러 왔다가, 칼을 갈고 있는 남선비에게 물었다.
“남선비야, 어떤 일로 칼을 갈고 있느냐?”
“우리 집의 부인님이 삽시간에 몸에 병을 일으켜 죽을 사경에 당해서 점을 치니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어야 낫겠다고 세 군데서 똑 같이 얘기를 해서, 할 수 없이 간을 내려고 칼을 갈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청태산마고할망이 혼겁이 나서 먼 올레로 내달았다.
네거리에 가보니 남선비 아들 일곱 형제가 있었다.
“설운 아기들아, 집에 가보니 너희 아버지가 너희들 일곱 형제의 간을 내려고 칼을 실금실금 갈고 있더구나.”
어쩔 방법이 없는 일곱 형제는 대성통곡하며 어디 있는지 모를 어머니께 빌고 빌었다.
“어머니 살아 있으면 빨리 와서 우릴 구해주고, 죽었거들랑 그 혼정으로 우리들을 살려 주십시오.”
눈물이 지칠 때쯤 똑똑한 막내 녹디생이가 의견을 냈다.
“설운 형님들, 그리 울지 말고 여기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아버님이 가는 칼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빼앗아 오겠습니다.”
형님들을 네거리에서 기다리게 하고 녹디생이는 집으로 갔다.
“아버지, 그 칼 갈아서 뭐 하실 겁니까? 땔감 하러 가실 겁니까?”
“아니다. 너희 어머니가 사경을 헤매서 문복을 하였더니, 세 군데서 똑 같이 너희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이면 낫겠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너희들 간을 내어 어미를 먹이려고 칼을 갈고 있노라.”
“아버님아, 그거 좋은 일입니다.
어머니 병인데 저희들 간인들 아끼겠습니까?”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구나.”
“그런데 아버님아, 아버님 손으로 우리 일곱 형제의 간을 내려면, 아버님 가슴도 일곱 번 아파야 될 것이고,
죽어서 묻으려면 일곱 구덩일 파야할 테고, 흙 한 삼태기씩이라도 끼얹으려 하여도 일곱 삼태기 아닙니까?
그러니 그 칼을 나에게 주면 설운 형님들을 굴미굴산 깊은 숲속에 데리고 가서 여섯 형님들 간을 내어 와서
어머님께 먹여 봐서 효력이 있으면, 그때 나 하나만 아버님 손으로 간을 내십시오.
아버님은 한 번만 가슴 아프시면 될 거 아닙니까?”
“그래. 어서 그것은 그리 하라.”
아버지의 칼을 가져 온 녹디생이는 형님들을 데리고 눈물로 다리를 놓으며 굴미굴산으로 향했다.
가다가 시장기가 몰려와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졸다 보니, 저승 가던 어머님이 꿈에 나타났다.
“설운 아기들아, 어서 바삐 눈을 떠 보아라.
산중으로 노루 한 마리가 내려오고 있을 게다.
그 노루를 잡아, 죽일 판으로 위협을 주고 있으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다.”
일곱 형제가 눈을 떠보니, 아닌 게 아니라 노루 한 마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일곱 형제는 꿈에 본 어머니의 말씀대로 노루를 잡아 죽일 판으로 위협을 주었다.
노루가 말했다.
“설운 도령들아, 나를 죽이지 마십시오.
뒤에 보면 멧돼지 일곱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미는 씨를 보존해야 하니 남겨 놓고 새끼 여섯은 간을 내어 가십시오.”
“거짓말 아니냐?”
일곱 형제는 이 노루의 말이 사실이 아니면, 나중에라도 찾아내 혼내줄 요량으로 노루의 꼬리를 끊고,
백지 한 조각을 꽁무니에 붙여 두면서 표시를 해 두었다.
그 때에 낸 법으로 노루 꼬리는 칼로 싹둑 잘라낸 듯 짧은 법이고.
노루 몸뚱이는 아롱다롱하는 법이다.
일곱 형제는 노루의 말대로 멧돼지 일곱 마리 중 어미는 씨받이로 놓아두고, 새끼 여섯 마리의 간을
내어 단단하게 챙기고 집으로 내려왔다.
“설운 형님들이랑 동서남북 중앙으로 벌려 서십시오.
내가 큰 소리를 지르거든 동서쪽에서 달려드십시오.”
형님들을 사․오방으로 다 벌려 세워 두고, 녹디생이가 간 여섯을 가지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녹디생이는 돼지의 간을 내어 어머님께 올렸다.
“어머님아, 이것을 잡숴 보십시오.
이거 잡수고 살아나십시오. 형님들 내 손으로 다 죽이고 간을 내어 왔습니다.”
“아이고 설운 아기야, 설운 애기 애 내어 왔구나. 이 일을 어찌할꼬.”
“어머님아, 어머니가 사는 게 우선입니다.
우리가 죽어도, 다시 어머님이 한 배에 셋씩 세 번만 나으면 아홉 형제로 불어날 거 아닙니까?”
“아이고 설운 애기야, 고맙구나.
그런데 중병에 약 먹는 것은 안 보는 법이니, 너는 내가 약을 먹을 동안 밖에 나가 잠시 기다려라."
녹디생이는 마루로 나와 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창에 구멍을 뚫어두고 거동을 살폈다.
노일저대는 여섯 개 간을 먹는 척 하면서, 앉은 돗자리 밑으로 슬쩍 슬쩍 감추고 피는 입술에 바르는 척
마는 척 하는 것이었다.
“어머님아, 약을 다 자셨습니까?”
“그래, 다 먹었다.”
“몸의 병이 어떠신 것 같습니까?”
“조금 나아 보인다마는 …. 그런데,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애 하나만 더 먹으면 아주 활짝 좋아질 듯하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어머님, 그럼 마지막으로 어머님 머리의 이나 잡아드리겠습니다.”
“설운 애기야 고맙다마는 중병에 들었을 때 이 잡는 법 아니다.”
그러면 어머님 눕던 자리나 깨끗이 치워드리겠습니다."
“야야, 중병 들었을 때 청소하는 법 아니다.”
노일저대 재간에 당해낼 길이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녹디생이가 돗자리를 확 걷으니 숨겨둔 멧돼지 간이 후루룩 쏟아졌다.
녹디생이는 화를 발딱발딱 내면서 노일저대의 쉰다섯 자 긴 머리를 좌우로 뱅뱅 감아 한 편으로 메다치고,
한쪽 손에는 간 세 개씩 여섯 개를 쥐고서는, 지붕 위 상마루 높은 곳에 올라가서 외쳤다.
“이 동네 어른들아, 저 동네 어른들아, 의붓어머니 의붓자식 있는 사람들아, 요거 보고 반성하십시오.”
이때 녹디생이의 형들도 작대기를 들고 와락 집안으로 달려들었다.
동서로 와라치라 달려드니, 노일저대구일의딸은 벽을 긁어 뜯어서 벽에 구멍을 뚫고 변소로 달아나다 쉰다섯 자
머리 지들팡(변소의 디딤돌)에 목이 칭칭 감겨 죽어 갔다.
일곱 형제는 분하고 분한지라 이미 죽은 노일저대에게 다시 복수하였다.
노일저대의 두 다리를 뜯어 디딜팡(디딤판)을 만들었다.
머리는 끊어서 돗도고리(돼지의 밥그릇)를 만들었다.
머리털은 끊어 던져버리니 저 바다의 해초가 되고, 입은 끊어 던져버리니 솔치(고기류)가 되고,
손톱 발톱은 끊어 던져버리니 쇠굼벗 돌굼벗(조개류)이 되고, 배꼽은 끊어 던져버리니 굼벵이가 되고,
하문은 끊어 던져버리니 대전복 소전복이 되고, 남은 육신은 복복 빻아서 바람에 날려 버리니 각다귀, 모기가 되었다.
멍하니 서서 보던 남선비는 도망갈 길을 잃어 겁결에 먼 올레로 내닫다가 올레 정낭에 목이 걸려 죽어갔다.
노일저대가 이처럼 요망한터라 변소의 물건을 함부로 집안에 가져오면 동티가 난다고 여겨 멀리 두었고,
남선비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살피는 신이 되었다.
노일저대에게 분풀이를 하고 난 일곱 형제는 ‘이만하면 시원하다’며 서 있었는데, 올레로 까마귀가 와서
까옥까옥 울어댔다. 녹
디생이가 어머니 죽은 곳을 가보자고 하였다.
일곱 형제는 서천꽃밭에 올라가 황세곤간을 달래어 뼈오를꽃, 살오를꽃, 도환생꽃을 얻고 주천강으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빠져 죽은, 오동나라 주천강은 물로 가득 차 있었다.
“명천같은 하늘님아, 주천강 연못이나 마르게 해 주십시오.
어머님 신체나 찾으리다.”
일곱 형제가 빌고 비니, 삽시에 강의 물이 잦아들었다.
어머니의 뼈가 살그랑이 남아 있었다.
일곱 형제는 어머니의 뼈를 모아 놓고 그 위에
생기오를꽃, 웃음웃을꽃, 말하게하는꽃, 오장육부오를꽃, 걸음걸을꽃, 성화날꽃, 울음울을꽃을 놓고
송낙막대기로 어머니를 한 번 두 번 연 세 번을 때리니
‘아이구, 봄잠이라 너무 오래 잤다~.’
하며 여산부인이 일어났다.
아들들은 어머님이 누웠던 자리인들 그냥 내버릴 수 없어서 흙을 차례차례 모아 시루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돌아가면서 손주먹으로 한 번씩 찍으니 여섯 구멍이 터지고, 녹대생이가 발뒤꿈치로 한 번을 찍으니
가운데 구멍이 터졌다.
그 때 낸 법으로 시루 구멍은 일곱 개가 되는 법이다.
시루는 화덕과 제사 음식의 기원이다.
일곱 명의 아들들은 서천 꽃밭으로 가서 환생꽃을 얻어다가 어머니를 살린 뒤, 물속에서 추웠을 어머니를
하루 세 번 불을 쬐면서 지내시라고 조왕할망으로 좌정시켰다.
그 때 낸 법으로 조왕은 끼니를 마련하는 곳이며 생명의 물과 불이 있는 신성한 공간이므로 늘 깨끗하고
청결하게 모셨다.
남선비와 일곱 아들에게 헌신한 것처럼 가정살림의 안정과 부를 가져다준다고 믿은 것이다.
그 뒤 큰형님은 동방청대장군으로 들어서고,
둘째 형님은 서방백대장군으로 들어서고,
셋째 형님은 남방적대장군으로 들어서고,
넷째 형님은 북방흑대장군으로 들어서고,
다섯째 형님은 중앙황대장군으로 들어서 오방토신이 되었고,
여섯째 형님은 뒷문전으로 들어섰다.
똑똑한 막내 녹디생이는 문전신이 되었다.
그 때에 낸 법으로 명절 기일 제사 때 꼭 문전제를 지내며, 제상의 제물을 조금씩 덜어 내서
한 그릇에 담고 지붕 위에 올리고 나면, 다시 조금씩 떠서 이번은 조왕할머니에게 올린다.
또 여산부인 조왕할망과 노일저대는 처첩관계였기 때문에 부엌과 변소는 멀리 있어야 하고
부엌엣 물건은 변소에 못 가져가고 변소엣 것은 부엌에 못 가져가는 법이다.
(끝)
참고:현용준「제주도 무속자료사전」,문무병「제주도무속신화」,제주문화원「제주신화집」
-김정숙
http://blog.ohmynews.com/feminif/517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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